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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공예의 재료와 제작공정, 사후관리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20세기 초에는 우각판을 투명유리판으로 대신하고 석채보다는 양칠(洋漆)을 한 화초장(華草欌)이 발달하였는데 손쉬운 제작공정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화각의 부드럽고 따뜻한 질감과는 달리 유리는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화초장(華草欌)은 얇은 투명 유리판 뒷면에 여러 가지 색으로 십장생·꽃과 나비·풀과 물고기·토끼 등 민화풍의 그림들과 부귀공명(富貴功名)·자손창성(子孫昌盛)·만수무강(萬壽無疆) 등 항상 기구하는 글월을 시문한 후 그 뒷면에 노랑이나 분홍 색종이를 붙여 여성적인 화사함을 나타내었다. 유리판은 우각판에 비하여 쉽게 깨지고 두껍고 무게가 있기 때문에 함이나 소품을 제작할 수 없다. 때문에 장과 농, 의걸이장의 쥐벽칸이나 머름칸, 문판 등의 복판에 사용되었고 검붉은 화류목 골재로 둘러지고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사용 중 유리판이 깨지기 쉽고 수리 및 보수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있으며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가치에 대한 경시풍조와 관리 소홀로 인해 숫자가 많지 않아 매우 귀한 편이다. 화초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예재료 개발의 필요성에 부응해가는 한국 목가구의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화각공예의 재료와 제작공정, 사후관리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20세기 초에는 우각판을 투명유리판으로 대신하고 석채보다는 양칠(洋漆)을 한 화초장(華草欌)이 발달하였는데 손쉬운 제작공정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화각의 부드럽고 따뜻한 질감과는 달리 유리는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화초장(華草欌)은 얇은 투명 유리판 뒷면에 여러 가지 색으로 십장생·꽃과 나비·풀과 물고기·토끼 등 민화풍의 그림들과 부귀공명(富貴功名)·자손창성(子孫昌盛)·만수무강(萬壽無疆) 등 항상 기구하는 글월을 시문한 후 그 뒷면에 노랑이나 분홍 색종이를 붙여 여성적인 화사함을 나타내었다. 유리판은 우각판에 비하여 쉽게 깨지고 두껍고 무게가 있기 때문에 함이나 소품을 제작할 수 없다. 때문에 장과 농, 의걸이장의 쥐벽칸이나 머름칸, 문판 등의 복판에 사용되었고 검붉은 화류목 골재로 둘러지고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사용 중 유리판이 깨지기 쉽고 수리 및 보수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있으며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가치에 대한 경시풍조와 관리 소홀로 인해 숫자가 많지 않아 매우 귀한 편이다. 화초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예재료 개발의 필요성에 부응해가는 한국 �목가구의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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